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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책을 꽤 읽는 편인데도 막상 글을 쓰거나 문제를 풀 때 단어 하나에서 막히는 경우, 저도 첫째를 키우면서 여러 번 겪었습니다. 어휘력은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글 안에서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읽어내는 힘입니다. 이 글에서는 독서 습관을 갖춘 아이도 왜 어휘력이 부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제가 실제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은 방향을 솔직하게 풀어봅니다.



    독서를 해도 어휘력이 안 느는 이유

    첫째가 초등학교 때는 좋아하는 시리즈를 같은 책을 세 번씩 읽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비문학 교재에서 단어 하나에 발이 묶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냥 사춘기 탓이려니 했는데, 들여다보니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아이가 읽어온 책들이 대부분 소설이나 판타지 장르였습니다. 이런 책에는 대화체나 감정 표현이 풍부하지만, '상승', '하강', '증가', '감소'처럼 설명문이나 논설문에 자주 등장하는 문어적 어휘(written vocabulary)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문어적 어휘란 일상 대화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책이나 신문, 교과서에서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군을 가리킵니다. 이 어휘들은 독서를 통하지 않고는 자연스럽게 습득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어휘 학습지나 한자어 교재를 따로 풀리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어휘는 문맥 안에서 쓰일 때 비로소 의미가 확정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어장을 외운다고 해서 실제 독해에서 그 단어를 제대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어휘력의 진짜 원천은 독서의 양이 아니라 독서의 다양성에 있다는 결론에 닿게 됩니다.

    요약: 소설 위주의 독서만으로는 문어적 어휘가 채워지지 않으며, 어휘력은 장르의 다양성에서 자랍니다.

     

    독서습관을 망치지 않으면서 어휘를 넓히는 방법

    아이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볼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에 "스스로 찾아봐"라고 했는데, 그게 독서의 흐름을 끊어버렸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책 읽다가 사전 앱 켜고 단어 찾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꽤 번거롭습니다. 독서의 연속성(reading flow)이 끊기면 아이가 그 책에서 흥미를 잃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여기서 연속성이란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글의 흐름을 따라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아이가 단어를 물어보면 사전 정의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그 단어는 '점점 올라간다'는 뜻이야" 정도로 짧게 답해주고 바로 책으로 돌려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맥락을 붙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지, 그 순간을 어휘 수업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EBS 국어 강사 윤혜정 선생님이 제안하는 방법도 같은 방향입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문맥 추론(context inference), 즉 앞뒤 문장을 보며 스스로 뜻을 유추해 보는 과정을 먼저 거치고, 그다음에 사전을 찾아 예문까지 확인하는 것이 어휘력을 체계적으로 늘리는 방법이라고 합니다(출처: LiveWiki 윤혜정 강의 요약). 추론 후 확인이라는 두 단계가 짝을 이룰 때 단어가 실제로 뇌에 붙습니다.

    독서 시간과 어휘 학습 시간은 철저히 분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 중에 고사성어 학습을 끼워 넣으면 독서 자체가 공부처럼 느껴지고, 아이가 책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실수를 한 번 했고, 이후로는 어휘 연습은 별도 시간에, 독서는 독서대로 순수하게 남겨두고 있습니다.

    요약: 독서 중 모르는 단어는 짧게 답해 흐름을 유지하고, 어휘 학습은 독서 시간과 분리해야 합니다.

     

    비문학독서, 억지로 권하면 역효과 납니다

    첫째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바로 비문학 책을 아예 손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사, 과학, 사회 분야 책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룡 관련 도감을 즐겨 보더니, 중학교 교과 연계 비문학은 왜 이렇게 거부감이 강한 건지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들여다보니, 제가 고른 책들이 문제였습니다. 교과와 연계된다는 이유로 글밥이 많고 구성이 딱딱한 책들만 권했던 겁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미 학교에서 교과서를 읽는데 집에서도 그런 형식의 글을 읽어야 하니 부담이 이중으로 쌓인 셈이었습니다.

    이후로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우선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에서 비문학의 접점을 찾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의 역사나 프로그래밍 입문서처럼 흥미와 지식이 교차하는 책을 먼저 건네봤습니다. 강제로 "이거 읽어"보다 "이거 재밌어 보이던데 같이 봐도 돼?"가 훨씬 자연스러운 진입이 됩니다.

    나태주 시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빚을 내서라도 책을 사줬는데, 그 책들을 억지로 읽으라고 강요받지 않았기에 오히려 책과 단어를 사랑하게 됐다고 합니다(출처: LiveWiki 나태주 강의 요약).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읽으라고 해서'가 아니라 '읽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경우입니다.

    •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와 연결된 비문학 책을 먼저 찾는다
    • 교과 연계보다 흥미 연계를 우선순위에 둔다
    • 부모가 먼저 읽고 "이거 재밌더라"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 억지로 완독을 요구하지 않고, 관심 생기는 챕터부터 읽도록 둔다
    요약: 비문학은 교과 연계보다 아이의 흥미를 접점 삼아 자연스럽게 연결할 때 거부감이 줄어듭니다.

     

    문해력은 어휘력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어휘력과 문해력(reading literacy)은 종종 같은 말처럼 쓰이지만 엄밀히는 다릅니다. 어휘력이 단어 자체를 아는 능력이라면, 문해력은 그 단어들이 문장 안에서 어떤 의미로 연결되는지를 읽어내는 힘입니다. 쉽게 말해 어휘력이 재료라면 문해력은 그 재료로 요리를 완성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애상감'이라는 단어를 외웠다고 해도, 시 한 편에서 그 감정이 어떤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어휘를 안다는 것이 실제 독해에서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여기서 애상감이란 슬픔과 그리움이 뒤섞인 정서를 가리키는 문학 개념어로, 이런 개념어 하나를 모르면 작품 전체의 정서를 반대로 해석하는 오류까지 생깁니다.

    제가 경험상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낀 방법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처음 본 표현을 노트에 옮겨 적는 습관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도 책을 읽기 전에 한 구절 이상을 필사하며 자신만의 파일로 정리해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인 문장들이 나중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는 말이 저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어휘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문장 안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마치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단어의 뜻은 앞뒤 문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휘 교재만 반복해서 풀기보다는, 문맥 속에서 단어를 만나는 경험을 꾸준히 쌓는 것이 문해력을 진짜로 기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문해력은 어휘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문맥 안에서 단어의 의미를 읽어내는 힘까지 포함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책을 많이 읽는데도 어휘력이 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A. 읽는 책의 장르가 소설이나 판타지 위주로 편중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상 대화에는 잘 등장하지 않지만 교과서나 신문에 자주 쓰이는 문어적 어휘는 비문학이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서만 자연스럽게 채워집니다. 독서의 양보다 장르의 다양성이 어휘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Q. 아이가 비문학 책을 너무 싫어하는데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A. 교과 연계를 먼저 앞세우면 아이 입장에서는 또 다른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취미나 관심사와 연결된 비문학 책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부모가 먼저 읽고 "이거 재밌더라"며 자연스럽게 건네는 방식도 거부감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어휘력 기르려고 어휘 교재 따로 풀리는 게 효과 있나요?

    A. 어휘 교재가 완전히 의미 없지는 않지만, 문맥 없이 단어만 외우는 방식은 실제 독해에서 활용도가 낮습니다. 어휘는 문장 안에서 쓰일 때 뜻이 확정되는 특성이 있어서, 독서를 통해 문맥 속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과적입니다. 어휘 교재는 독서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쓰되, 독서 시간을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

     

    Q. 아이가 책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떻게 해줘야 하나요?

    A. 길게 설명하거나 사전을 찾게 하면 독서의 흐름이 끊깁니다. "그 단어는 '늘어난다'는 뜻이야" 정도로 짧고 간결하게 답해주고 바로 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맥락을 놓치지 않게 돕는 것이 목적이고, 그 순간을 어휘 수업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

    어휘력은 단어를 외워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다양한 글을 읽으며 문맥 속에서 단어를 반복해서 만나는 과정에서 쌓입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독서 습관만 잡으면 다 될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는데, 장르의 편식이 문어적 어휘의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숙제는 첫째가 흥미를 느낄 비문학 책을 함께 찾아보는 것입니다. 억지로 권하기보다 옆에서 먼저 읽으며 자연스럽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독서가 의무가 아니라 즐거운 일상으로 남아 있어야, 어휘도 문해력도 그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탑니다.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다면, 일단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비문학의 접점을 한 권만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livewiki.com/ko/content/84e8eb0d-1a2d-4aaa-b23f-b9bc6cccb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