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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뉴스를 무심코 넘기지 못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2026년 9월 1일 오전, 경기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 계단에서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가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범행 직전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로 112에 신고했고, 녹음에는 "애기 일로와 일로와"라는 엄마 목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만 남았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한참 눈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강력 범죄가 아니라, 반복된 위험 신호 앞에서 보호 체계가 어디서 멈췄는지를 묻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복 신고 뒤에도 막지 못한 이유 — 위험도 평가의 빈틈
피해자 B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이번 사건 당일까지 총 5회에 걸쳐 가정폭력 관련 신고와 상담을 했습니다. 4월에는 파출소를 직접 찾아가 뺨을 맞았다고 진술했고, 남편이 칼을 들고 "너가 죽든 내가 죽든 누구 1명 죽어야 끝난다"라고 협박했다는 내용도 상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이 기록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 정도면 이미 위험 신호가 충분히 쌓인 것 아닌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B씨에게 가정폭력 사건 접수, 임시조치, 임시숙소 이용을 안내했습니다. 여기서 임시조치란 가정폭력처벌법상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하거나 접근을 금지하는 법적 처분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법원이 가해자에게 "당분간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말라"라고 명령하는 절차입니다. 하지만 B 씨는 보복이 두려워 사건 접수 자체를 극구 거부했습니다.
"왜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기 쉽지만, 제 경우엔 이 부분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보복 두려움이라는 것은 피해자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실제로 신고 이후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하는 구조적 현실에 대한 반응입니다. 국내 가정폭력 연구에서도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가해자의 보복 우려'가 꾸준히 지목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이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개념이 위험도 평가(Danger Assessment)입니다. 위험도 평가란 가정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할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재클린 캠벨 교수가 개발한 이후 여러 나라에서 경찰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칼을 이용한 위협, 이혼 소송 중인 관계, 반복 폭력 이력은 이 평가에서 모두 높은 위험 점수로 이어지는 항목들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체계적 도구가 현장에서 일관되게 쓰이지 않으면, 상담 기록이 아무리 쌓여도 결국 "본인이 거부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게 됩니다.
스마트워치 지급은 의미 있는 조치였습니다. B 씨는 4월, 5월, 8월 세 차례 스마트워치를 받았고, 실제 범행 당일 이 기기로 112에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는 사후 신고 수단이지, 사전 분리 수단이 아닙니다. 칼 위협과 반복 폭행이 기록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장치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는 실질적 분리보호 체계였다고 생각합니다.
- 칼을 이용한 직접 살해 위협 — 상담 기록에 명시됨
- 이혼 소송 진행 중 — 관계 종료 국면은 위험 고조 시기로 분류됨
- 반복 폭행 및 폭언 이력 — 지난해 3월부터 5회 신고·상담
- 피해자 거처 이전 — 숨어 지낼 만큼 공포가 현실적이었음
- 가해자가 소장을 통해 거처를 파악 — 법적 절차가 오히려 위치 노출 통로가 됨
어른의 사건이 아닌 것 — 현장에 있던 아이의 이야기
신고 녹취록에 기록된 "엄마엄마"라는 소리를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두 글자 앞에서는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순간 그 아이가 느꼈을 것들을 제가 다 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기억이 아이의 안에서 어떤 형태로 남게 될지를 생각하면 오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범행 현장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A씨에게 자녀 정서학대 혐의가 추가된 근거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정서학대란 신체적 상처 없이도 아동의 정신 건강과 발달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행위를 말하며, 직접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폭력 장면에 아동을 노출시키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가정폭력 목격은 아동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즉 충격적 사건 이후 장기간 지속되는 심리적 고통 반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출처: 아동권리보장원).
제가 직접 관련 사례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건이 종결된 뒤 아이의 이름은 기사에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구속 여부, 법적 처벌의 수위,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아이는 그 현장을 기억한 채 어딘가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번 사건처럼 부모 중 한 명이 가해자이고 다른 한 명이 피해자로 사망한 경우, 아이에 대한 장기적 심리 지원과 안정적 양육 환경을 누가 책임지는지가 명확하게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트라우마 인식 기반 돌봄(Trauma-Informed Care)이란 아동이 경험한 충격적 사건의 영향을 이해하고, 재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접근 방법을 말합니다. 몸에 상처가 없다고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이 아이에게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사회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정폭력 피해자가 신고를 거부해도 경찰이 강제로 조치를 취할 수 있나요?
A. 가정폭력처벌법상 경찰은 피해자 동의 없이도 긴급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를 현장에서 격리하거나 100미터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처분이 가능합니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거부하면 적극적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관행이 남아 있어, 이 부분의 운용 기준을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Q. 이혼 소송 중에 상대방이 내 주소를 알 수 있나요?
A. 이혼 소송 진행 시 법원에 제출하는 소장에는 양측의 주소가 기재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이혼 소장에 기재된 피해자의 거처를 확인해 범행 장소로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경우 주소 비공개 신청 제도를 활용할 수 있으며, 소송 전에 법원 또는 법률구조공단에 먼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가정폭력 피해자 스마트워치는 누구나 받을 수 있나요?
A.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경우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스토킹, 성폭력 피해자 중 보복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신청 가능합니다. 가까운 경찰서에 직접 요청하거나 112 신고 시 상담을 통해 연결받을 수 있습니다.
Q. 가정폭력 현장을 목격한 아이는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
A. 가정폭력 피해 아동은 해바라기센터, 아동보호전문기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심리 상담과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목격 자체도 정서학대로 인정되므로 직접 신체 피해가 없어도 지원 대상이 됩니다. 관할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112·117에 연락하면 연계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이 사건을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못 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입니다. 이 한 문장이 제도의 한계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고하면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을 때, 피해자는 신고라는 선택지 자체를 포기합니다.
위험도 평가 도구를 현장에서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 이혼·별거 과정처럼 위험이 오히려 높아지는 시기에 더 촘촘한 분리보호 조치가 작동하는 것, 그리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현장에 있었던 아이에 대한 장기적 지원이 끊기지 않는 것. 제 경험상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뉴스는 반복됩니다. 이 사건이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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